합리적 개인주의

우리의 불행은 집단주의 문화와 그로 인한 수직적 문화로 부터 시작된다. 공동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를 위한 문화이다. 문유석이 말하는 개인주의란 개인주의+합리주의+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합리적 개인주의이다. 저자는 깊은 의속에 집단주의가 스며들어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해 비판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집단안에서의 희생을 감수하며 합리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 자신의 자유를 위한 타인의 존중,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과 다양성 존중이다.

 

한편으로는 "인간혐오"라는 강한 워딩을 써가면서 자신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저자가 합리적 개인주의를 말하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말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동기'의 관점에서 나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까? 나 또한 저자가 말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에 대해 찬성하며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근본 동기가 저자는 '나'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존중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나는 '나'가 아닌 '우리'의 행복이 그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너와 나,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합리적 개인주의를 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그 무게중심이 '나'의 쪽으로 쏠려있는 느낌이다. 이 부분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약간은 이기적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개인주의의 개인적 동기와 공동체적 동기의 차이인것 같다. 

 

실제 인간 세계에서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는 인과관계도 동기도 선악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문학은 이러한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풍부하게 체험하게 해준다. 문학적 감수성이 누구나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리고 서로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에 대해 공감할 줄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정위원 이야기

법원에 조정위원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냉철한 이미지의 법원에 조정위원은 부드러운 평화의 비둘기 같은 느낌이다. 스카이 출신, 학벌이 아니라 정말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이 있는 '진짜' 능력있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조정위원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어디분야에서 어떤 모양으로 어떤일을 하든 '진짜' 실력있다는 것은 이 조정위원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그 능력은 공부만 한다고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또 조정위원이 하는 일이 무작정의 감정 노동의 과정도 아니다. 그들은 온전히 사건 당사자들과 함께 있음으로 그들의 생각과 아픔을 공감한다. 그리고 냉철한 지식으로써 그들의 문제를 정확히 분석하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인상이나 말투보다 더 중요한 능력 즉, 분쟁의 핵심을정확히 파악한다.  양쪽의 말을 이리저리 듣다가 적절한 시점에서 합리적인 타협안을 자신있게 제시하는 카리스마도 필요하다. 서로의 의견이 상충될 수 있지만 그 접점을 그들과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내심이 필요하다. 끈기 있게 장기적으로 설득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판결이 이루어 지는 사법과정에서 조정위원같은 인간적인 제도가 있다는것이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위원 이야기를 읽으면서 크게 감명받고 느낀 것이 있다. 우리는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과 사랑이 풍성하지 못한 현재 우리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그 가뭄가운데 단비를 내려주는 사람은 어디서나 필요하다. 내가 단비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조정위원 처럼 그들과 진심으로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진짜'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자유와 민주

자유가 커지면 질서가 불안정해지고 민주가 커지면 소수자의 인권은 멸시될 수 있다. 무엇이든 극단적인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중용이다.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모순적인 관계의 자유와 민주이다. 이 둘이 서로를 견제하고 싸우면서 그 관계을 역동적으로 유지하는 위태위태한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 중용이다. 그 너머에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폭넓게 공유하여 이를 내면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싸워야 한다.

 

마치며

개인주의자 선언의 마지막 문단은 문유석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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