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자본주의 정신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청도교 정신이다.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를 발달시켰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에 자본주의 정신이 있었다. 자본주의 정신은 금욕주의적이고 삶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존재론적인 불안감을 떨처내고 싶어했던 당시의 개신교들은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청교도들은 금욕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것 많은 절제와 인내가 요구되기 때문에 구원받은 이가 아니라면 할 수 없다는 논리로서 금욕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였다. 그것이 그들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증명하고 불안에서 자유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 루터의 직업정신

루터의 직업 개념

세속적인 노동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하지만 종교개혁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직업 개념이 등장했다. 루터는 세속적인 노동을 종교적인 가치와 연관시켰다. 노동이 그 자체로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했다. 루터에게 도덕적 의무를 다한다는 것은 직업 자체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의 직업의 의무와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운명, 섭리론적인 의미를 갖는 전통주의적 개념이다.

→ 근대 자본주의적 직업 개념의 기원으로 보기 어렵다.

 

칼빈주의와 개신교 분파의 영향

자본주의 발달사에서 칼빈주의와 개신교 분파가 주목할만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직접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나 자본주의 체계를 탄생시켰다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종교개혁자들은 그 누구도 윤리개혁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관심자는 오로지 영혼의 구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종교개혁의 종교적 동기가 근대 문화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즉, 종교개혁이 근대 자본주의 문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종교적인 동기가 근대 자본주의 문화의 어떠한 요소들을 역사적으로 발전시켜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 금욕주의적 개신교의 직업윤리

저자가 관심갖는 것은 윤리적 지침이 아니라 금욕주의적인 생활양식을 이끌었던 심리학적 동력이다. 종교적 신앙과 삶의 양식 그리고 그러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심리학적 동력에 주목한다.

 

칼빈주의

칼빈주의의 핵심교리는 예정론이다. 예정론은 문화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예정론이 어떠한 역사적인 인과적 중요성을 갖는지를 알아본다. 먼저 예정론 교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 예정론 교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모든 계획을 하시고 주관하신다. 또한 이 세상에 대한 절대주권을 갖는다. 본질적으로 소망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예정하신 개개인에 대한 예정에 따라 전적인 은혜를 통해 구원의 길로 부르신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에 있다. 예정된 인간을 그것을 거부할 수 없으며 은혜를 주지 않기로 작정된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루터교는 인간의 신앙심에 따라 구원을 여부가 결정된다는 입장이지만 칼빈주의는 영원전부터 모든것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인간이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본다.

 

- 세상, 타인 혐오와 불안

예정론은 극단적인 신앙의 형태이다. 칼빈주의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거대한 시간의 흐름속에 잠깐 존재하는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였다. 문화에 대한 혐오를 낳았고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신뢰를 약화하는 경향을 낳았다. 칼빈주의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이라 생각하였고 이는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졌다.

 

- 구원의 확실성과 금욕주의

영혼 구원 에 대한 본질적인 불안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가? 첫째로 구원 받았음을 믿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의심은 마귀의 역사이며 견고한 믿음은 은혜로부터 오는 것이다. 둘째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직업적 노동이다. 이를 곧 택함의 증거로 보았다. 내적 체험을 강조하고 신비주의적인 태도를 갖는 루터교와는 달리, 칼빈주의는 믿음의 작용에 의한 행위적인 특질을 구원의 증거로 보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활양식을 성실히 영위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적인 자기통제가 구원이 확실성을 만들어 낸다고 본다.

 

칼빈주의의 관심은 오로지 구원에 있었고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증하기 위한 동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세속에서의 자기통제, 자기주도적 삶이 중시되었다. 따라서 일시적인 감정을 따르는 것이 아닌 이성에 의한 규범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금욕주의적 생활양식을 띄게 되었다. 악한 감정 뿐 아니라 무의미하고 무절제한 감정도 악으로 치부하였는데, 이는 이성을 냉철을 약화시키기 때문이었다. 또한 발전과정에서 세속적 직업활동을 통해 구원의 유무를 증명해야한다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금욕주의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적극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체계적인 노동을 통해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타인에게 유익을 끼치는 행위 즉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경건주의

경건주의는 개혁교회의 금욕주의적인 전통이 강화된 형태이다. 이들은 교리나 신학적인 지식보다 경건한 행위와 삶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신학적 학식이 뛰어나다고 해서 분명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며, 지식이 없다고 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건한 행위 추구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여 작은 집단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실천적 성화를 강조했던 칼빈주의와는 달리 경건주의는 죄사함을 중시하여 세속에서의 하나님과 함께함을 느끼는 내적 체험과 감성을 강조한다. 은혜의 상태에 있음을 삶 속에서 확증해야 한다는 칼빈주의 사상이 경건주의에서는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방향으로 전환된다. 이로 인해 칼빈주의에 비해 세속적인 삶의 조직화 정도가 약화되었지만 루터교에 비해서는 종교적 삶의 체계적인 조직화는 강화된 모습을 띈다.

 

감리교

존 웨슬리로 유명한 감리교의 핵심은 회심과 성화이다. 감성적인 회심은 성화로 들어가게 한다. 감성적인 회심을 강조하지만 삶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살아가는 합리주의 기반의 금욕주의를 말한다.

웨슬리는 행위구원을 비판한다. 주객이 전도되어있기 때문에다.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성을 확인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그 행위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마음의 동기를 가질 때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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